
저는 아이의 글자를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스케치북에 자기 글자를 적어왔는데 '이'를 'lo'로 적고, 숫자 '3'이 반대로 뒤집혀 적어 오더군요. 처음에는 글자를 쓰는 자체가 신기하고 멋져서 '대단하다!' 하고 칭찬만 하고 박수를 쳐줬는데, 벽에 붙여진 글자를 그대로 따라 적는데도 반대로 적어서 가져왔습니다. 반복되는 거울 글자(Mirror Writing)를 보며 이걸 그대로 냅두는게 나을지 아니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도록 기다리는게 나은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찾다보니 이 고민은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모님들도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이가 처음 글자에 관심을 가질 때 암호처럼 반대로 써 내려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그래서 간혹 리서칭을 하려고 찾으러 다니면 같은 상황에서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까, 혹은 그런 신호일까 걱정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만 5~6세 아이들에게 거울 글자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발달 과정의 일부입니다. 오늘은 부모님들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과학적 이유를 안내 드리면서 이러한 거울 글자를 언제까지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왜 글자를 반대로 쓸까요?
아이들이 글자를 뒤집어 쓰는 이유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뇌가 사물을 효율적으로 인식하려는 본능 때문입니다.
- 사물 불변성의 법칙: 우리 뇌는 사물을 볼 때 방향과 상관없이 '그 물체'라고 인식합니다. 컵을 왼쪽에서 보든 오른쪽에서 보든 똑같은 '컵'이죠. 아이들의 뇌는 아직 이 본능이 강합니다. 그래서 '3'을 오른쪽으로 쓰나 왼쪽으로 쓰나 똑같은 '3'이라고 인식하는 것이죠. 어른인 저희의 눈에는 솔직히 너무나도 다르게 오히려 아이의 뇌가 어른인 저희보다 효율적이여서 생긴 일입니다.
- 좌우 대칭의 혼란: 위아래 구분은 중력 덕분에 비교적 빨리 익히지만 좌우는 아이들에게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뇌의 시각 처리 장치가 글자를 '방향이 중요한 기호'로 완전히 인지하기 전까지는 좌우를 뒤섞어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합니다. 왠지 아이가 제가 운전할 때 좌회전, 우회전에 대해서 헷갈려하긴 하더군요.
- 손의 협응력 발달 과정: 오른손잡이 아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를 써 나가는 방향 감각을 익히는 데는 꽤 정교한 소근육 조절 능력이 필요합니다. 아직 이 조절력이 미숙한 경우, 손이 가는 대로 편한 방향으로 쓰게 되는 것이죠. 저희 아이가 아직 이런 협응력에 익숙해지는 단계였네요.
"교정해줘야 하나요?" - 정답은 'NO'
아이의 거울 글자를 발견했을 때, 가장 피해야 할 행동은 "틀렸어, 반대로 써야지!"라며 즉각적으로 수정하거나 지적하는 것입니다. 면박을 주거나 화를 내면 더더욱 안됩니다.
- 자신감 하락: 이제 막 글자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 아이에게 '틀림'이라는 낙인은 독서와 쓰기에 대한 흥미를 순식간에 앗아갑니다. "내가 쓴 건 다 틀린가봐"라는 생각에 연필 잡는 것조차 거부하게 될 수 있죠.
- 자연스러운 소멸: 대부분의 아이는 초등학교 1~2학년이 되면서 시지각 능력이 완성되고, 독서량이 늘어남에 따라 거울 글자 습관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아도 뇌가 스스로 글자 방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저의 경험담: "엄마, 내 글자는 마법 글자야!"
저희 아이도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계속 글자를 반대로 적고 있습니다. '이건 반대로 썼잖아~ 이게 똑바른거지' 라고 아이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어~ 이건 너의 이름을 적은거네? 정말 멋지다.' 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벽에 붙은 글씨를 따라 쓸 때 거울 처럼 반대로 쓰더라도 '와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적었지. 정말 멋지다~ 이거 거울에 비치면 정말 똑같을 것 같아' 하고 아이에게 보여주고 했습니다. "거울 속에서는 벽에 붙은 것처럼 글자가 똑바로 보이네! 정말 마법 같다, 그치?" 라고 맞장구도 치구요.
이렇게 놀이처럼 접근하니 아이는 쓰기를 '공부'가 아닌 '즐거운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적하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글자의 경우는 다음에 본인이 수정을 해서 올바르게 쓰기도 했구요.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저는 언젠가 아이가 거울 모드가 아니게 쓸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놀이법
아이의 거울 글자를 지적하는 것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니 금지하시고, 공간 지각력과 시지각 능력을 키워주는 놀이를 함께 해보세요. 뇌의 발달을 통해 아이의 좌우 감각을 더 빠르게 익힐 수 있습니다.
- 몸으로 방향 익히기: "오른손 들어봐!", "왼쪽으로 한 걸음!" 같은 놀이를 통해 몸의 좌우 대칭 감각을 먼저 익히게 도와주세요. 저 같은 경우는 몸은 아니지만 운전을 할때 '엄마가 좌회전 할거야 우회전 할거야' 라며 방향을 찾아주던가. 간식을 집을 때 '저건 왼쪽에 있어', '오른쪽 봐봐' 등의 표현을 많이 하면서 아이가 익히게 하고 있어요.
- 공중 글쓰기 & 모래 글쓰기: 종이에 연필로 쓰는 대신, 공중에 크게 글자를 그리거나 쟁반에 담긴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보게 하세요. 큰 근육을 사용하면 방향 감각이 더 뇌에 잘 각인됩니다. 모래 글자 같은 경우는 몬테소리 교구에도 있던 것을 알긴 했는데 모래 위에 글자를 쓰는 활동 또한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습니다.
- 그림 속 '틀린 그림 찾기': 좌우가 미세하게 다른 그림을 찾는 놀이는 아이의 시각적 변별력을 높여주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틀린 그림 찾기를 못하는 편이라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았는데 이제라도 보여주도록 해야겠습니다. 속이 터지면 어떻게 하죠?
언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반대로 적을 순 없으니까요. 만 7~8세(초등학교 2학년 수준)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글자를 반대로 쓰고, 책을 읽을 때 줄을 자주 건너뛰거나 단어를 거꾸로 읽는 증상이 지속된다면 그때는 전문가를 찾아 '난독증'이나 '시지각 발달 저하' 여부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5세 아이라면? 제가 한 그대로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됩니다. 즉 초등학교 가기 전에는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의 거울 글자는 우리 아이의 뇌가 글자라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며 열심히 적응 중이라는 아주 멋진 적응 과정입니다. 아이에게 "똑바로 써!"라는 잔소리 대신 아이가 쓴 '거울 글자'에 담긴 정성과 노력에 먼저 박수를 보내주세요. 저도 가끔은 속이 터질 때가 있지만 오늘도 무사히 넘겼습니다. 몇몇 글자는 아이가 다시 똑바로 쓰고 있기도 하구요. 저의 경험처럼 서서히 아이의 글자는 제자리를 찾게 될 것 입니다. 거울처럼 꺼꾸로 써도 너무 멋진 글자라고 격려해준 제 자신이 오늘 조금 멋지게 느껴지네요.
오늘도 아이의 삐뚤빼뚤한 글자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 있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모든 부모님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