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하원 길, 아이가 "오늘 친구가 내가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 뺏어갔어"라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의 마음은 무너집니다. "너도 뺏지 그랬어!"라고 말하자니 아이를 싸움꾼으로 만드는 것 같고 "친구가 빌려달라고 하면 줘야지"라고 하자니 우리 아이가 먼저 가지고 놀고 있던 것인데 우리 아이만 치여 사는 것 같아 속상하죠.
저 또한 아이가 친구가 달라고 하면 무조건 양보하고, 너무 양보를 잘해서 걱정이였습니다. 양보를 해주면 주변 어른들이 착하다고 칭찬을 해주다보니 아이가 더 하는 것 같고 계속 양보만 하다간 나중에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지 못하면 어떻게하지 싶었어요. 그러다가 정말 재밌는 장난감이 보이면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구석에 숨어서 하는 경우가 자주 있고 혼자 노는걸 더 편해하기도 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이와 관련해 리서칭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사회성의 시작은 '양보'가 아니라 '경계(Boundary)'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나중에 진심 어린 "고마워"와 "미안해"도 할 줄 알게 됩니다.
5세에게 거절이 어려운 이유
아이들에게 거절은 단순히 "싫어"라는 말을 넘어선 심리적 도전입니다.
- 미움받을 용기의 부족: 5세 아이들은 이제 막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거절하면 친구가 나를 싫어할까 봐, 혹은 선생님께 혼날까 봐 두려워 꾸역꾸역 양보를 선택하곤 하죠.
- 대체 언어의 부재: 거절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거나, 밀치거나, 혹은 그냥 울어버리는 것으로 거절을 대신하게 됩니다.
- '착한 아이' 프레임: 우리가 무심코 던진 "양보 잘해야 착한 아이지"라는 말이 아이에게는 '거절은 나쁜 것'이라는 공식으로 각인될 수 있습니다.

실전! 아이에게 가르쳐줄 '거절의 3단계 문장'
거절도 기술입니다. 아이와 집에서 역할극(Role-play)을 통해 다음의 문장들을 연습해 보세요.
1단계: "지금은 내가 가지고 놀고 있어" (상황 설명)
친구가 무작정 장난감을 뺏으려 할 때, 무조건 "안 돼!"라고 소리치기보다 현재 상황을 정확히 말하게 합니다.
연습: "친구야, 이건 지금 내가 놀고 있는 거야."
2단계: "다음에 빌려줄게" (대안 제시)
거절이 관계의 단절이 아님을 알려주는 단계입니다. 기한을 정해주면 친구도 기다릴 힘이 생기고, 아이도 마음의 짐을 덜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 다음 차례 친구가 있으면 10번을 더 타고 다음 친구를 타게 해준다던가 식으로 차례를 알려주기도 했어요.
연습: "이거 다 놀고 나서 너한테 줄게. 조금만 기다려줘."
3단계: "밀지 마, 기분이 안 좋아" (단호한 의사 표현)
만약 친구가 신체적으로 밀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짧고 강하게 멈춤(Stop)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이때는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는 아이가 이 상황극을 할때마다 자꾸 웃으면서 해서 이건 진짜라고 생각하고 화를 제대로 내봐. 표정을 더 진지하게 해봐 하고 엄청 애먹었었습니다.
연습: "밀지 마. 나 아파. 하지 마!"
저의 에피소드: "미안해, 하지만 내 차례야"
하루는 아이의 친구가 저희 아이가 하던 장난감을 하겠다고 계속 조르던 일이 있습니다. 아이는 친구가 계속 조르자 고민을 하더니 바로 포기하고 주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개입해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지금 하고 있는 장난감을 더 안 하고 바로 친구에게 주고 싶어? 괜찮아?" 아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말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직접 말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친구의 마음을 생각하는 너의 마음은 좋지만, 너가 조금 더 놀고 싶다면 '지금은 내가 놀고 있어 금방 놀고 다음에 네 차례야'라고 말해도 괜찮아. 그건 나쁜 게 아니야." 아이는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이건 내가 제일 아끼는 거라 줄 수 없어. 미안해. 대신 내가 10번 하고 너가 할까?" 신기하게도 친구는 "알았어"라고 쿨하게 대답하더니 10번을 채우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는 다른 놀이를 찾으러 갔습니다. 거절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아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해 보였습니다.
부모님이 꼭 지켜주셔야 할 원칙
- 아이의 거절을 존중해주세요: 집에서 아이가 "지금은 이거 하기 싫어요"라고 할 때, 부모님이 "어디서 말대답이야!"라고 하신다면 아이는 밖에서도 거절하지 못합니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 거절은 집에서도 충분히 수용받아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아이가 거절할 때 이유를 묻고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면 알았다고 인정해줍니다. 물론 그냥 하기 싫어서, 먹기 싫어서 이런게 이유면 정해진 규칙이니 안 된다고 하죠.
- '양보'를 강요하지 마세요: 손님이 왔을 때 아이의 장난감을 억지로 빌려주게 하는 행동은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됩니다. "이건 네 거니까 네가 결정해"라며 선택권을 존중해 주세요. 대신 너무 안 빌려주면 민망하더라구요. 그래서 너가 오늘 안 빌려주면 너도 친구집에 갔을 때 그 친구 장난감으로 놀 수 없어 그래도 괜찮다면 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하면 빌려주더군요.
- 역할극은 짧고 재미있게: 인형이나 피규어를 이용해 "나 이거 빌려줘!", "안 돼, 나중에 줄게!"라며 주고받는 놀이를 자주 해보세요.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고 입이 먼저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희 아이는 파워 거절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어디서나 환영받는 '친절한 아이'가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진정한 친절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자기 마음을 단단하게 지킬 줄 아는 아이가 타인의 마음도 진심으로 배려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원 길, 아이가 친구 관계 때문에 속상해했다면 "네 마음을 말해도 괜찮아"라고 따뜻하게 다독여주세요. 그 한마디가 우리 아이의 사회성을 키우는 가장 큰 비타민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유리 멘탈' 부모님과 아이들을 응원하며, 저 또한 아이와 함께 건강한 거절 연습을 계속해 보려 합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