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5살이 되니 이제 제법 혼자 책상에 앉아 책을 넘겨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물론 글자를 보는 것은 아니고 그림을 보며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긴 합니다. 나름대로 대사도 곁들여가며 읽더군요. "어 아니야 아니야 싸우면 안돼" 라던가 하면서 말이죠. 부모로서 가장 뿌듯하고 귀여운 순간입니다. 책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하기도 합니다. 저희 집은 다행히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거실 한쪽에 일반 책장과 북카트를 활용해 나름의 독서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가 책장에서 책을 고르고 읽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깨달은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왜 늘 읽던 책만 꺼내 올까? 저 빽빽한 전집들 사이에 재밌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때 알았습니다. 아이는 책의 '내용'이 아니라, 빽빽하게 꽂힌 책들의 책등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어릴 적부터 전면 책장을 들이면 좋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건 어릴때니 얘기고 이젠 많은 책을 읽을 나이가 됐으니 전면 책장보다는 꽂혀있는 책장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5살이여도 여전히 전면 책장이 좋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왜 일반 책장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전면책장을 검색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기대되는 변화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왜 5세에게 '전면책장'이 필수좋을까요?
글자를 완벽히 읽지 못하는 5세 아이들에게 책은 읽는 대상이기 이전에 시각적인 놀잇감입니다. 저희 아이도 혼자 보지만 그림만 보면서 내용을 유추하고 대사를 외치는 것 처럼 말이죠.
- 시각적 문해력(Visual Literacy)의 자극: 뇌과학적으로 아이들은 텍스트보다 이미지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전면책장은 예쁜 색감과 매력적인 캐릭터가 그려진 표지를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아이에게 "나 좀 봐봐, 여기 정말 재밌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어!"라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흥미를 가지기 좋겠죠.
- 선택의 피로도 줄이기: 수백 권이 꽂힌 일반 책장에서 제목을 읽고 책을 뽑는 것은 5세에게 꽤 에너지가 쓰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전면책장은 아이가 직관적으로 "어! 저 그림 궁금해!"라며 툭 집어 들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작은 '쉬운 시작'이 독서 몰입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아이가 겉표지가 궁금한지 모든 책을 책장에서 꺼내기도 하는데 그 순간 정리할 것을 생각하면 막막한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문제는 아이 또한 선택을 하느라고 그걸 다 뽑고 확인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는 점입니다.
'발견의 기쁨'을 선물하는 큐레이션 무대
저희 집 거실의 일반 책장에는 책육아를 위주로 하시는 분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3-4 세트의 전집이 꽂혀 있습니다. 그래도 따지자면 몇백권은 되는 분량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손이 닿는 곳은 정해져 있고 읽어보지 못한 책들은 몇 달째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죠.
- 잊혔던 명작의 귀환: 저는 전면책장을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오늘의 전시회' 무대로 활용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평소 잘 안 보던 책이나, 계절에 맞는 책을 전략적으로 정면에 배치해줌으로써 아이가 "어? 이런 책도 있었네?"라고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을 주고 싶거든요. 지금은 본인이 흥미를 느끼는 책들만 꺼내서 보고 있어서 답답하기도 합니다. 맨날 무섭다면서 유령이나 도깨비가 나오는 이야기만 꺼내와서 속상하기도 하거든요.
- 북카트로 확인한 효과: 사실 저는 지금 북카트에 5~6권 정도를 따로 담아 거실에 두는 방식으로 '미니 큐레이션'을 실천 중입니다. 확실히 일반 책장에 있을 때보다 북카트에 꺼내 놓은 책에 아이의 손이 더 자주 가더라고요. 여기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표지가 보이면 아이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사실을요.
3. 환경이 바뀌면 아이의 행동이 바뀝니다
몬테소리나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 철학에서 강조하듯, 아이의 환경은 아이의 행동을 결정하는 제3의 교사입니다.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책이 '전시'되어 있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일상의 즐거운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책 읽어라"라는 잔소리 대신, 아이가 스스로 예쁜 표지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드는 풍경. 제가 전면책장을 통해 거실에 일으키고 싶은 가장 큰 마법입니다.
물론 거실 인테리어를 생각하면 깔끔한 일반 책장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의 상상력이 폭발하는 이 소중한 5살 시기에, 책의 '표지'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부하며 깨닫고 있습니다. 전면책장은 책에게 목소리를 주는 도구입니다. 표지라는 예쁜 옷을 입고 아이에게 "나 좀 봐줘!"라고 속삭이게 만드는 것이죠.
저희 집 거실이 조금 답답해질 수도 있지만 하지만 아이가 소파에 엎드려 전면책장에서 갓 꺼낸 그림책에 푹 빠져있는 뒷모습을 상상하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아이의 상상력이 자라나는 공간, 거실 한구석에 저와함께 작은 전면책장 하나로 마법을 시작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어지는 2탄 포스팅에서는, 이 전면책장을 어떤 책들로 채우면 좋을지 제가 공부한 '실전 북 큐레이션 전략'을 공유드리겠습니다.
참고자료
[도서] 선택의 패러독스 - 배리 슈워츠